그림자 형성
자아의식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동일시하고 흡수하는 것은 자아와 페르소나의 일부가 되고 거절한 건 그림자가 된다.
페르소나는 자아의식과 어느 정도 같으며, 개인의 정신적,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페르소나나 그림자나 자아에 이질적인 건 사실이다.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형제와 같지만 하나는 다른 한쪽을 보완하거나 종종 적대하기도 한다. 페르소나와 그림자는 서로 대칭적 관계에 있지만, 쌍둥이만큼 가깝지는 않다.
페르소나는 문화변용, 교육, 그리고 물리적, 사회적 환경의 적응 결과로 형성된 인물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페르소나는 개인의 의식적 생각과 감정을 타자에게 감추거나 드러내는 일을 하는 기능 콤플렉스이다.
콤플렉스의 한 형태로서 페르소나는 높은 자율성을 지녔으며, 자아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지는 않다. 배우가 대사가 싫어도 기억한 대로 말하듯이, 어느 날 누가 나에게 "잘 지내시나요?"라고 물으면 난 재빨리 "잘 지냅니다. 당신도 잘 지내시죠?"라고 망설임 없이 대꾸하지 않은가.
페르소나는 이렇게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회적 상호작용이 쉬워지게 하고 어색함이나 사회적 곤란을 일으킬지도 모를 거친 부분을 유연하게 해준다.
보완적 기능 콤플렉스인 그림자는 페르소나가 허용하지 않는 것을 하길 원하는 잠재 인격으로 간주한다. 그림자를 통합하는 것은 가장 까다로운 도덕적이고 심리학적인 문제이다.
그림자를 완전히 외면한다면 삶은 적당할지 모르나 아주 불완전한 것이고 그림자를 경험할 여지를 둘 때는 부도덕의 오점을 남기겠지만 더 큰 전일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페르소나
융은 정상적인 인간 정신에 수많은 잠재 인격들이 내재한다고 했다. 이런 다중 인격이 정상적인 개인에게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임상적 의미에서 모두 "다중 인격자"들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은 실제로 "인격 분열의 흔적"을 드러낸다는 것도 사실이다.
밖에서는 천사고 집에서는 악마가 되는 경우를 보면, 밖에선 너그럽고 친절한 부모가 집에선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격은 상황적이다.
융은 가족, 학교, 직장 등 특별한 환경은 사람들이 특별한 태도를 보이게 한다고 지적한다. 태도란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이지만, 사람이 상황이나 환경에 지속해서 적응하게 한다. 따라서 태도란 인격의 한 특색이다.
태도가 오래 지속되고 환경의 요구에 자주 응할수록 더 습관적으로 된다. 어떤 환경에 적응하도록 특별한 태도를 발달시켜 특별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훈련받으면, 그렇게 하도록 훈련받은 대로 신호나 임시에 응대할 수 있다.
가정과 직장은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자아는 페르소나와 상당히 분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삶에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왜냐하면 자아는 생활하면서 역할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아의 핵심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원형적이다. 즉 `나`의 중심이다. 자아의 핵심에서 원형적 측면은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나`, 즉 자기 self의 드러남이지. 간단히 말해서 `나 됨 i-am-ness`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면에서 자아는 외부의 영향력을 허용한다. 그런 영향은 자아가 새로운 내용과 동일시할 때 침투해 자아의 순수한 `나 됨`을 밀어낸다. 이것을 자아의 `습득`이라 하는 것이다.
순수한 `나 됨`(원형의 한 단편)은 눈에 띄지 않게 되어 의식에서 완전히 숨거나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긍심과 소속감은 물론 자신의 모든 정체성과 현실감을 페르소나에 진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때로 무엇과 동일시되지 않는 순수한 `나 임 i am` 상태에 있을 수 있고, 또 때론 페르소나의 이미지에 깊이 몰입되기도 한다.
페르소나의 두 원천
융은 페르소나의 두 원천을 밝혀냈다. "사회적 조건과 요구에 따라, 사회적 성격은 한편으론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지고, 다른 한편으론 개인의 사회적 목적과 열망에 맞춰진다."
사회가 개인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려면 개인이 사회에 소속되기를 원해야 한다.
자아는 페르소나가 갖는 특성과 사회가 요구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받아들이는 동기부여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일시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개인은 문화 주변부에서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
일반적으로 명망 있는 역할일수록 동일시는 더욱 강해진다. 폐품 수거인 같은 하층계급 페르소나 역할은 동일시를 보통 꺼린다. 하지만 뭐 국회의원 같은 역할은 동일시가 강하다.
자아와 페르소나의 기능 콤플렉스는 상반된 목표를 갖고 있기에 이들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자아는 근본적으로 분리와 개성화를 지향하며, 자율성을 향한 강한 운동, 즉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나 됨`을 강하게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에 페르소나가 뿌리내린 자아의 다른 부분은 이와 반대 방향으로 대상 세계와 관계하고 이 세계에 적응하려 한다.
이들은 자아 안에서 두 가지 상반된 경향성, 한편으론 분리와 독립을 향한 욕구를, 다른 한편으론 관계와 소속을 향한 욕구를 보여준다.
분리 및 개성화를 향한 자아의 근본적 욕망은 종종 그림자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욕망이 집단 생리와 개인 안녕에 위협이 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자아가 환경과 관계를 맺고 적응하려는 건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노력은 페르소나가 정착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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