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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리비도와 성

by 심리를 도와주는 나그네 2022. 9. 5.
콤플렉스의 가장 핵심적인 다른 부분은 "개인의 성격에서 타고나고 그 사람의 기질에 의해 결정된 요소"이다.
 
예를 들어 부모 콤플렉스의 경우 이 부분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원형적 이미지인데, 이는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에서 온 것이다.
 
 
성격 안의 원형적 요소들은 전형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반응하고, 행동하고, 상호작용하는 타고난 기질이다. 이들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융의 원형 이론은 이어지는 다음 장들에서 다뤄지겠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정신의 원형적 요소가 콤플렉스의 경험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경험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콤플렉스란 정신적 외상 때문에 형성된다. 정신적 외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원형적인 부분은 이미지와 동기를 유발하는 힘으로 존재하지만, 콤플렉스처럼 장애와 불안을 일으키는 특질을 갖지는 않는다.
 
정신적 외상에서 비롯된 감정적 기억 이미지는 원형 이미지와 결합하고, 이들은 다소 영구적인 구조로 응결된다.
 
이렇게 형성된 구조는 특정한 양의 에너지를 함유하고, 에너지를 함유한 구조는 다른 연관 이미지들 안에서 엮여 더 큰 망상 조직을 형성한다.
 
 
어떤 정신적 외상은 개인 정신의 내면에서 주로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태도는 변화무쌍하므로 여러 상황에서 우리의 전일성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참된 느낌을 부인해야 하며 그 표현도 삼가해야 된다.
 
 
이렇게 순응하다 보면 인간의 본질적 부분을 배제하는 사회적 가면, 즉 `페르소나`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회적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는데, 하지만 사회의 기준을 어긋나는 사람들은 밀려난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우리는 융이 말하는 도덕적 갈등에 빠지는 것이다.
 
심층적 차원에서 진정으로 요구되는 건 전일성이다. 만일 사회와 문화의 구속이 전일성을 향한 인간의 내면적 추동을 엄하게 금지한다면, 인간 본성은 이러한 구속에 반항하는데, 이것 역시 콤플렉스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콤플렉스 분출

 
 
콤플렉스의 분출이 온전히 자발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나 분출을 미묘히 유발하는 자극이 있다. 예를 들어 신경증적 우울증은 내부에서 발생하는 듯 보이지만, 이러한 우울증의 원인은 사소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자아가 이런 경로에 붙들리면 콤플렉스와 이 콤플렉스가 지향하는 목적에 동화되어버리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한 사람은 왜 그랬는지 이유를 인식하지 못한다. 단순히 `어떤 분위기`에 빠져 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자아가 일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바로 사로잡힘의 본질이다.
 
즉 자아는 자신을 스스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 하나의 콤플렉스와의 이러한 동일시는 다른 이름으로 통했는데, 그것은 홀림이라고 불렀다.
 
 
홀린 정도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에서 정신병과 만성질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홀림의 상태를 관찰해보면, 보통 자아가 갖는 특성 및 방식과는 다른 성격의 면모가 명백히 드러난다.
 
 
이 같은 미지의 면모는 일정 기간 무의식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다 갑자기 자아는 이렇게 내면의 대극 opposite에 의해 압도되어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악마에 사로잡힌 나머지 의식이 이전에 가장 성스럽다고 여긴 것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투레트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홀림. 증상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이른바 정상적 심리를 가진 사람에게 분열된 성격들은 상당수 쉽게 포착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 자체를 드러낸다. 그중 일부는 혀 꼬임이나 건망증같이 거의 포착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런데 진짜 홀린 상태에 빠지면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특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구세주 콤플렉스는 어린 시절에 버려진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전형적으로 발달한다.
 
 
이때는 친절함이나 도움을 주는 행동 방식의 콤플렉스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런 특성들은 통합된 형태로 자아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자아가 제어하지 못하는 자율적 콤플렉스에 뿌리내리고 있으므로 스스로 찼다 이울었다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행동이 아무리 자신이나 타인에게 파괴적일지라도 삼가지 못한다. 임의로 하는 경향이 있으며, 갑자기 일관성을 잃어버려 예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른 분열된 정신들(콤플렉스)은 자아의 후원을 받으려고 경쟁하는데, 쉽게 홀리는 자아가 어느 한 콤플렉스와의 동일시를 중단할 때 이 자아는 다른 콤플렉스로 이동해간다. 재밌는 건 이 두 번째 콤플렉스는 종종 첫 번째 콤플렉스의 일종의 그림자 형제나 자매이다.
 
그리스도처럼 영적, 상향적, 베푸는 이타적 특성을 갖는 콤플렉스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 태도를 보이는 악마적 콤플렉스와 필적한다. 이들 두 콤플렉스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번갈아 가며 자아를 홀리는데, 전자는 공적인 사회에서 공적인 페르소나로 기능하고, 후자는 사적이고 친밀한 환경에서 의식적 성격을 지배하는 것이다.
 
 
자아는 융이 말한 `에난티오드로미아`, 즉 상대편 대극에로의 전환에 취약하다.
 

 

 

3장 정신 에너지(리비도 이론)

 
 
리비도는 욕망이며, 감정, 즉 정신에 생명을 불어넣는 피이다. 융은 리비도를 `정신 에너지`라고 불렀다.
 
정신 에너지는 모든 깨어 있는 생명과 꿈꾸는 생명에 존재한다. 전기라는 은유를 사용하자면 `전기가 들어온` 상태와 `전기가 나간` 상태가 차이 난다는 것이다.
 
 
 

성과 리비도

 
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정신 과정과 행동의 주요 동기부여자라는게 프로이트의 주장이었다. 특별히 성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리비도는 인간이라는 기계에 시동을 걸어 작동하는 원동력이라고 봤다.
 
 
프로이트는 성적 갈등이란 모든 신경증과 정신병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융은 정신병리학에서 성적 갈등이 중심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미심쩍어하며 유보하는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어 `고픔 hunger`이라는 충동이 존재하듯 말이다.
 
하지만 초기에 프로이트와의 협력을 위해 대놓고 자기주장을 밀진 않았지만 갈수록 이런 차이가 발생해서 멀어진 것이다.
 
 
융은 성적 리비도는 더 보편적인 의지 또는 생의 힘의 한 지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다. 인간 발달의 어떤 단계에서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성적 리비도는 현저하고 근본적이지만, 다른 단계에선 그러한 현저함과 근본성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융은 진화론적 관점을 취하면서 한때 의미와 의도에서 성적이었던 활동들이 어떻게 음악과 예술 같은 비성적인 활동으로 변화되었는지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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