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에 지속해서 나타나는 형태를 통해 융은 원형이란 가설을 구축했다. 만일 어떤 원인에 따른 결과가 충분히 강하고 지속적이라면, 과학자는 그 결과를 설명해서 추가적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가설적인 공식을 만든다.
이어서 융은 [아이온]에서 자아는 두 가지 토대, 즉 신체의 토대와 정신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각 토대는 다층적이며, 부분적으로 의식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무의식에 존재한다.
자아가 이 토대들에 기초한다는 것은 자아의 뿌리가 무의식에까지 닿아 있다는 것이다. 상층 구조에선 합리적, 인지적, 현실 지향적이지만 심층적이고 감추어진 층에서 감정과 환상 및 갈등의 유동에, 그리고 무의식의 신체적, 정신적 수준이 부과하는 침입에 자유롭지 못하다.
자아는 어느 정도는 의식과 분리될 수 있다. 운전할 때 자아가 다른 곳에 집중이 쏠려 있을 때 운전은 자아에 속하지 않은 의식에 맡겨지듯, 의식은 그동안에도 자아와는 별도로 지속해서 정보를 검열하고, 수용하며, 처리하고 반응하고 있다.
위기가 발생하면 자아는 제자리에 돌아와서 책임을 담당한다. 자아는 다른 일상적 기능들을 그 기능에 익숙해진 의식에게 맡긴다.
융에 따르면 자아가 성장하도록 하는 것은 `충돌`인데, 이 충돌은 갈등, 곤경, 고뇌, 슬픔, 고통 등을 의미한다. 환경과의 충돌로 발생하는 적당한 갈등, 좌절은 자아 성장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은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성장 초기의 자아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처를 입을 때 심각한 정신적 외상으로 그 이후의 자아 기능은 크게 손상되는 것이다.
이런 자아는 스트레스에 쉽게 붕괴하며 원시적인 방어기제에 의존해 세계와 떨어져 담을 쌓고 정신을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타자와 삶 일반에게서 지속해서 버림받았다고 크게 실망한다.
두 살 난 아동이 "아니요"라고 말할 정도가 되면 자아는 환경적 도전에 대처할 뿐 아니라 그 환경의 여러 측면을 변화 및 통제하려고 이미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의 자아는 수많은 충돌을 일으켜 스스로 강해지는데 쉴 새 없이 부지런하다.
아동기에 자율성을 성취한 자아는 의식을 뜻대로 지배하고 지휘할 수 있다고 느낀다. 지나치게 불안한 사람에게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경계심은 자아가 이처럼 확실한 자율성 수준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환경과 충돌하면서 자아가 발달한다는 융의 견해는 충족되지 않은 환경에 직면하며, 인간이 불가피하게 겪는 모든 좌절 경험의 잠재성을 창조적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충돌이 잘 처리되면 자아는 성장한다.
심리 유형
현실과 충돌이 일어나면 이제 막 생기기 시작한 잠재적 자아가 깨어나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깨어난 자아는 세계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어떤 수단이든 마련해야 하는데, 융은 자아가 수행할 수 있는 수단 또는 기능은 네 가지이고, 이들 각각은 내향적(내부로 보는) 태도나 외향적(외부로 보는) 태도 중 하나로 발전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자아가 어느 정도 발달하면 내면세계로 나아갈지 외부 세계로 나갈지 결정하는 선천적 성향이 점차 선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자아가 환경에 적응하고 이에 수반되는 조건을 수행할 때 두 가지 주요한 태도(내향성과 외향성)와 네 가지 기능(사고, 감정, 감각, 직관)은 자아가 앞으로 발달해갈 방향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선천적인 유전적 경향을 가진 자아는 사람에 따라 특정한 `유형`적 태도와 기능을 결합하며, 이 결합이 부족할 경우 균형을 맞추려고 보완적인 이차적 결합하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3차와 4차적 결합은 별로 사용되지 않으므로 이용도 잘 안 할뿐더러 발달도 더디게 된다고 융은 주장한다. 이런 결합을 통해 형성된 것을 융은 `심리 유형`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내향적 태도를 보이는 경향을 보이고 태어났다고 해보면, 유아기에 이미 수줍은 성격을 드러내며, 독서와 공부처럼 홀로 일하기를 선호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만일 이 아이가 네 기능 중에서 사고 기능을 사용해 세계에 적응하고자 선천적 내향성과 결합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경향에 맞는 과학 또는 학문 같은 활동을 추구하며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내향적 영역에 머물러 있는 한 자기 일을 잘 수행하고 확신에 차며 이런 방식에 만족하겠지만, 강한 사회화가 필요한 외향적 영역을 담당할 때 일의 효율성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상당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자주 받을 것이다.
만일 내향적 사람이 외향적 태도를 선호하는 문화나 가정에서 태어나면 억지로 외향성을 발전시켜 환경에 적응해야 된다. 상당히 큰 대가를 요구할 것이며 만성적이고 크나큰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한다.
네 기능과 두 태도 중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주 기능(1차 기능이라고도 함)과 선호되는 태도의 결합은 자아가 내면세계, 외부 세계에 적응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최상의 유일한 도구가 된다.
한편 이러한 결합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열등 기능(4차 기능으로 불리기도 함)은 자아를 활성화하는 데 좀처럼 이용되지 않는다.
2차 기능은 주 기능 다음으로 자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주 기능과 2차 기능이 결합할 때 자아는 스스로 앞으로의 성격적 성향과 그 성향을 성취하는 데 이러한 결합을 가장 빈번히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두 기능, 즉 주 기능과 열등 기능 가운데 하나는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이다. 외향적 기능은 외부 현실을 읽어내도록 해주며 내향적 기능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자아는 이러한 도구를 최대한 잘 이용해 내부/외부 세계를 제어하고 변화시킨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많은 경험과 우리 성격으로 인식되는 많은 것은 자아의식에 속하지 않는다. 활발한 소통, 타자와 삶에 대한 자발적 반응과 정서적 대응, 유머의 폭발, 슬픔의 분위기와 마력 등의 특질과 속성은 그런 규모의 자아의식이 아니라 더 큰 정신의 양상들과 연관된다.
그래서 자아를 전인적 인간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자아는 단지 행위자이고, 의식의 초점이며, 인식의 중심에 지나지 않지. 우리는 자아에 너무 많은 것을 전가하거나 너무 적게 전가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개인적 자유
전형적으로 젊은이는 심리적으로 경험된 것보다 더 크게 자아를 통제하고 자유의지를 성취했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우리가 외부적 권위에 종속된 만큼이나 자신의 인격적 구조와 내면에 도사린 악마에 종속되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융은 의지가 실제로 얼마나 자유로운지에 대해 답을 제시하려고 깊이 노력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듯 자아는 더 큰 정신적 실체인 자기(self) 위를 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실제 범위는 습관, 압력, 이용 가능성, 조건적 상황, 그리고 다른 많은 요인으로 제약받는다. 하지만 외부 세계뿐 아니라 내면세계에서도 자유의지는 자기 self가 제시하는 사실들과 갈등을 일으킨다.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정신이 통제할 수 없는 내적 필연으로서의 자아를 취할 때, 자아는 패배감을 느끼며 내면의 현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인정하라는 요구에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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