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 시리즈가 끝나고 이제 융을 소개하려고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블로그 개설 후 초기에 작성하는 프로이트니 융이니 상담심리학과 같은 이야기들은 원론적이고 복잡할 수 있다. 조만간 이들 시리즈를 마치면 인간관계에 관한 심리학을 다루려고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1장 표층(자아의 식적)
자아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출발점이고,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광대한 내면 우주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자아는 영혼의 복잡한 특성, 즉 많은 수수께끼와 아직 대답 되지 않은 질문을 보유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는 정신을 탐구할 수 있는 완벽한 지도를 만들기 원했으므로, 자아의식이 그가 탐험하는 영토의 주요한 특성이 되는 건 당연했다. 자아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답은 사람은 왜곡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진실하고 신실한 연구자의 의식에 사실로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정확한 건 아니다. 사실 인간에게 지식이라고 통용되는 것을 가까이에서 철저히 조사해보면 편견이나 왜곡에 기초한 신념, 편향, 풍문, 추측, 또는 순수 환상에 불과할 때가 많다. 따라서 융은 의식에 대한 비판은 본질적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의식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제시하고자 했다.
자아와 의식의 관계
융의 저서인 [아이온]에선 자아,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그리고 자기로 구성된 정신 구조에 대해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융은 자아를 이렇게 설명한다.
"말하자면 자아는 의식의 장의 중심을 형성하고, 이것이 경험적 성격을 구성하는 한 자아는 의식의 모든 개인적 행위의 주체다". 의식은 하나의 `장`이며 이른바 `경험적 성격`이란 우리가 직접 인식하고 경험하는 성격을 말한다.
`의식의 모든 개인적 행위의 주체`인 자아는 이러한 장의 중심을 차지한다. 자아라는 말은 의지, 욕망, 성찰, 행동의 중심으로서의 자신을 체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를 의식의 중심으로 정의 내리는 것은 융의 모든 저술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흐름이다.
자아란 정신 내용들이 `표상되는 주체`, 거울과 같다. 자아와의 연결은 감정, 사상, 지각 또는 환상 등을 의식적으로 하는 필수 조건이다.
의식은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며 무의식은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융은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미지의 정신`이며 의식하게 되면 이미 알고 있는 정신 내용과 어떤 점에서도 다르게 보이지 않을 모든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이유나 지속 여부에 상관없이 무의식은 의식 밖에 있는 정신의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
융은 저술들에서 종종 자아를 일종의 콤플렉스라고 했다.[아이온]에선 콤플렉스를 단순히 의식의 특별한 내용이라고 불렀고, 의식은 자아보다 더 큰 범주이며 자아와 자아가 아닌 부분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의식 자체 즉 장은 뭘까? 간단한 답은 의식은 일깨움이라는 것이다. 의식이란 깨어있어서 관찰하고 세계 주변, 의식 내부를 인지하는 상태이다.
의식의 반대는 꿈을 꾸지 않고 깊이 잠든 상태, 반응이나 감각적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몸에서 의식이 영구적으로 부재한 상태는 장기간의 혼수를 제외하곤 실질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발작 증세를 겪는 환자들에게서 입증되듯이, 의식 내용과 자아의 의식 기능은 의식 자체에 비해 더 일시적이므로 오래 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람은 기억을 완전히 잃고도 여전히 의식할 수 있다. 의식이란 정신 내용을 에워싸서 임시로 채우는 방 같다. 의식은 자아에 선행하지만, 이 자아가 결국 의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융은 일종의 자아 없는 의식, 의지적 중심인 `나`가 있다는 증거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 의식 형태가 적어도 짧은 기간엔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자아는 어느 정도 내용이 의식 영역 안에 머물고 어느 정도 내용이 무의식으로 깊이 빠져들지 결정하는 데 크게 관여한다.
융이 유용하다고 본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자아는 너무 힘든 내용은 억압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또한 자아는 무의식의 저장고에서 내용들을 회수할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감당하기 힘든 갈등들이 도달하지 못하게 하는 억압 같은 방어기제를 통해 봉쇄되지 않아야 하고, 자아와 매우 강한 연상적 연결이 되어야(매우 강하게 학습되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후천적 의식 내용을 통해 근본적으로 구성되고 규정되는 것이 아닌, 내용을 인식의 초점 안에 잡아두는 거울이나 자석 같다. 자아는 의식 내용을 우선순위대로 움직이고 배열하는 에너지의 중심축이고 결단과 자유의지의 자리이다.
자아는 의식 안에 있는 상당한 양의 자료를 지배하고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강한 자아는 의도적으로 많은 양의 의식적 내용을 획득하고 이동시킬 수 있지만 약한 자아는 이 정도 일을 감당할 수 없어서 충동이나 감정적 반응에 쉽게 굴복한다. 나약한 자아는 쉽게 분산되고 그 결과로 의식은 집중력과 동기의 지속성을 잃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수동적, 비활동적으로 되게 해서 카메라처럼 단순히 내면과 외부 세계를 관찰할 수 있지만, 그렇다 해서 상당한 기간 의지적으로 억제된 상태로 의식적 관찰을 지속하는 건 어렵다. 자아의 폭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정신이 보통 관찰 대상에 함께 신속히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라. 처음엔 단순히 그 배경과 인물을 바라보다가 어느샌가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우리 감정이 활성화된다. 우리가 만약 영화가 주는 이미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면 몸을 움직여 영화에 참여할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영화를 다 보고 극장을 떠난 뒤에 그 영향으로 폭력적으로 되거나 강한 성적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한다. 자아는 감정, 동일시, 욕망 등의 자극을 받고, 자아의 지시 기능과 에너지를 사용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아는 내면의 정신과 외부 환경의 자극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위협적 자극에 대해 팔을 들어 방어적 태도를 보일 수도 있고, 내부적 충동으로 활성화되고 자극받아 창조하거나, 사랑하거나 복수를 의도할 수도 있다. 자아는 자아 자체의 충동, 즉 자아도취적으로 이 충동에 반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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