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종교와 운명
프로이트가 종교에 관심을 가진 이유
프로이트는 다양한 신과 종교적 사상에 대해 거부했지만 신과 종교적인 믿음은 그에게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유태인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프로이트는 모든 종교적인 것에 매료되었다.
그는 현 세계의 삶을 결정하는 변화 및 변수를 다스리는 방법과 죽음에 대해 파악하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종교에 이토록 큰 관심을 보인 이유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론과 치료, 사상과 실제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답을 얻고자 했다.
프로이트의 종교에 대한 비판
프로이트가 작성한 [토템과 터부]에서 아들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후 느낀 죄책감이 세기를 거쳐 전해 내려와 종교가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종교는 신성한 존재가 세상을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두려움에 뿌리를 둔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문명화가 완전 좋은 것만은 아니며 종교와 그로인한 허구의 안락함이 형성된 것과 같은 맥락이라 주장했다.
인간은 연약하고 무방비한 존재로서 자연의 힘 앞에 쉽게 무너진다는거다. 자연의 맹습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어책은 개인이 아닌 단체로 살아가는거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이 생존법으로 인해 인간이라는 동물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갈등을 발견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문명화를 이루었지만 섹스와 폭력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억제해야만 했다는 것. 개인이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려들면 문명사회는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결혼, 가족 같은 제도는 그러한 본능의 힘을 안전한 수준으로 지켜주는 체제이다. 본능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당장 충족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만족감을 천천히 채우는 게 가능해졌다.
다른 형태로 욕망을 승화하기도 했다. 철학과 예술처럼 말이다. 그리고 종교도 금욕 대신 다른 보상을 제공했다.
그럼 종교는 어떤 보상을 줄까?
자연의 힘에게 인간의 형상을 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연은 인간과 소통하고 교류가 가능해졌다.. 신은 운명의 잔인함 앞에 사람들을 융화하고 문명화된 삶의 고통과 궁핍에 빠진 인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로 종교적 사상은 현세계를 초월해 의미를 부여한다. 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식으로.진정한 자기는 영혼에 있어서 죽음도 피해가며, 인간이 자연과 운명의 위험에 맞서 심리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게 만든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믿음이 심리적으로 유용하다는걸 부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믿음의 기저에 오류가 있다고 봤다. 종교는 현대 사회에 이르러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비과학적인 생각을 저버리지 못해서 현실의 냉정한 진실을 수용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다.
종교는 환상의 한 형태로, 우리가 사는 과학적인 시대와는 걸맞지 않다고 . 환상은 인간의 소망을 반영한다. 그건 실체적인게 아닌 욕망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지만 망상과는 다르다. 망상은 잘못된 믿음이기에 그렇다. 프로이트가 종교에 대해 말할때 이 두 단어를 때때로 혼용한다해서 환상을 잘못된 믿음이라 분류할 수는 없다. 망상은 항상 오류에 지나지않지만 환상은 이론상 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의 요점은 환상에 따른 믿음이 실체는 없지만 세상의 소망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왕자와 결혼하는 꿈처럼 종교적인 믿음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아동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로 보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보호해주길 기대하듯 종교적인 믿음에서도 볼 수 있다. 종교는 보안에 대한 심리적인 필요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영원히 아이로 멈춰 있어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상한 힘에 맞서줄 누군가의 보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그 힘이 아버지의 형상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그 후 인간은 두려워하고, 기꺼이 섬기며 자신의 보호를 맡길 수 있는 신을 창조한다. "
종교는 소원 성취의 한 유형으로 인간은 보호받기를 소망하며 전능한 아버지인 신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즉 소망을 성취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종교적 신념이 삶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소망의 성취로 해석될 수 있는 꿈이 무의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면, 종교는 무의식을 탐구하기 위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웃긴건 프로이트는 종교를 정신질환으로 봤다는 것이다. 종교를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강박적 신경증의 한 형태로 봤다.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반복적인 행동, 의식을 계획하는 신경증 환자와 상당히 비슷하게 봤다.
강박증 환자가 보이는 행동은 종교적인 의식과 유사한 것이다.
다만 신경증 환자의 행동에는 종교처럼 대중적이고 공동체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에겐 '개인적인 종교'가있을 뿐이다.
종교를 '우주적인 강박적 신경증'으로 정의하면서 의식을 지키는 행동과 착각에 따른 신념은 어떤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강박적인 행동의 근원이 밝혀지면 환자는 더이상 이상 행동을 보이지않는다고 말함)
그 원인 중의 하나가 위협적인 세상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라 생각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종교의 근원이 세기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인 행위라고 설명하면서 종교적인 '진실'을 무시했다. 죄책감이나(토템과 터부를 생각해보셈) 불안을 종교의 근원으로 인정한다면 더이상 종교적 논리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전 세계 철학, 종교, 정신분석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사상가들은 이런 프로이트의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존 히크같은 종교 철학가들은 프로이트가 종교의 뿌리를 심리 과정에서 찾으려 한다 지적했는데 그의 해석이 옳을 수 있지만 실제로 종교는 그런 양상을 보이지 않으며, 종교의 기원을 설명한다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도널드 위니컷 같은 학자들은 프로이트가 가장 비판받는 이유인 환상의 개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환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멸되는게 아닌 인간이 성장하는 동안 자기와 세상의 복잡한 관계 속에 일부로 남으며 서로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점에서 종교를 인류의 성장에 필요 없는 허구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니컷은 종교가 자기와 세상 사이에 존재하는 '이행기 영역'(아동의 이행기 대상과 관련, 이행기 대상이란 아동이 자신이 속한 세계와 동일시하는 장난감이나 기타 물체를 말하는거임.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에 위치한 이행기 영역에 창의성, 상상, 종교가 존재한다고 본것)을 차지한다고 봤다.
종교가 개인에게 중요한 자기와 세상의 관계를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풍부한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위니컷의 사상은 종교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종교가 세상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자신에 대한 소망과 연관되어 있다는 프로이트의 생각과도 다소 상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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