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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시간과 영원

by 심리를 도와주는 나그네 2022. 9. 13.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해 이뤄지는 막대한 투사에 기인한다. 첫 번째 단계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단계는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매혹되고, 모험과 로맨스의 감정에 휩싸이고, 확고한 신념으로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한 우리는 투사를 통해 세계의 구체적 대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의식 발달이 계속 진행된다면 특별한 투사 운반자들과 그들이 운반하는 투사가 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 결과로 투사는 탈 이상화된다. 투사된 정신 내용들은 추상적으로 되고 이들은 이제 이데올로기나 상징 형태로 나타난다.
 
 
전지전능이란 관념은 이제 인간에게 부여되지 않고, 이러한 특질들은 신이나 운명 또는 진실 같은 추상적 실체로 투사가 전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과 신학 같은 추상적 활동이 가능해진다.
 
투사가 세계의 구체적 대상에서 제거될 때, 예지를 갖춘 정치 지도자와 카리스마적 이념론자는 투사에 의한 관념과 가치 및 이데올로기 형태의 추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투사된 추상들은 지각에 있어 최상의 가치와 최고선을 지시하는 개념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은 일단의 책임과 `의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단순한 신비로운 참여나 투사에 기초한 무의식적 공감 대신에 사람은 의무를 지시할 수행 규칙을 갖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에서 무의식적 재료의 투사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인물이나 사물보단 원리와 상징 및 가르침에 몰입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에서 투사는 급격히 소멸한다. 신학적이고 이념적인 추상 형태에서조차 이런 소멸이 일어난다. 영혼에 대한 의식, 즉 삶의 큰 의미와 목적, 불멸은 실리와 실용 가치로 대체되었다. "작동됩니까?"라는 말이 주요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에선 자아 자체는 타인, 대상, 추상 관념에 이미 투사된 내용을 부여받는다. 자아는 옳음과 그름, 진실과 오류, 아름다움과 추함의 유일한 조정자가 되는 것이다.
 
 
융은 이 네 번째 단계에서 팽창된 자아는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없고 파국적 잘못을 초래하는 판단을 할 수 있으므로 매우 위험한 사태에 이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이나 가치와 관련된 사회적 관례의 통제를 더는 받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현대인이 반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렇게 발전될 가능성의 문은 활짝 열려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탈근대적 단계로 의식과 무의식의 재통합과 관련된다. 자아의 한계가 의식적으로 인식되고, 무의식의 능력이 감지되며, 융이 초월적 기능과 통합하는 상징이라고 부른 것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연합 형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투사에 정신의 실재가 있지만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의미에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원형 이미지에 접근하고 이 이미지에 의식적이고 창조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개성화의 중심부이며, 이것은 의식의 다섯 번째 단계가 수행하는 과제를 구성한다.
 
 
 
개성화는 사람이 심리학적 개인, 말하자면 개개의 나뉘지 않은 의식의 통일성, 다른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전체가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개성화는 자아의식의 통합과정으로,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의 전체 정신계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융이 전일성이라고 최종적으로 부르고 싶어 했다.
 
 
무의식에 이르는 길은 일차적으로 감정과 정서적 반응을 통하는 것이다. 전일성에 다가가기 위해 의식/무의식 체계는 서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신경증은 한쪽 면만 확실히 떠맡아주는 갈등에 기초한다. 즉 무의식은 억압되고, 사람은 에너지가 흐르지 않는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에너지는 매우 좁은 활동 범위에, 그리고 봉인된 무의식을 방어하는 데 사용되므로 삶의 전일성을 확립하고 충족할 수 없는 많은 가능성이 부정된다.
 
 
의식과 무의식은 한쪽이 다른 쪽에게 억압되고 해를 입으면 하나의 통일체를 만들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서로 경쟁해야한다면, 양쪽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공정한 싸움을 하게 해야 한다. 양자는 삶의 양상들이다.
 
 
의식은 그 존재 이유를 방어하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며, 무의식은 혼돈의 삶은 자체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열린 갈등인 동시에 열린 협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망치와 모루가 보여주는 게임이다.
 
 
망치와 모루 사이에 놓인 환자인 쇠는 파괴할 수 없는 전체, 즉 `개성화`로 단련된다.
 
이 생생한 이미지는 융이 이해한 대로 개성화 과정의 본질에 대해 말해준다. 근본적으로 별 탈 없이 조용히 보육기에 보호되어 성장하는 과정이 아니라, 대극 간 격렬한 충돌로 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 또는 자아와 아니마 사이의 충돌에 직면해야 하는 과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것은 `기개`, 즉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만나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지식이다. 이게 바로 대략 일컬어 말하려는 개성화 과정이다.
 
 
두 근본적 정신의 실재[의식과 무의식]가 갈등을 일으키면서 생긴 발달의 과정 또는 진행이다.
 
 
자기는 인간 삶에 출현해 정신을 통하여 끝없는 순환으로 자신을 스스로 새롭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는 자체의 목적을 위해 우리 몸을 비롯해 정신과 물질세계를 이용하고, 우리가 성장하고 나이 들어 죽은 다음에도 계속 존속한다.
 
 

9장 시간과 영원에 대해(동시성)

 
 
융은 무의식의 영토로 나아가면서 또 다른 접경지대를 발견했다. 의식의 성격과 비성격적 내용 사이, 즉 콤플렉스 영토와 원형적 이미지/본능이 결합한 영토 사이에 있는 접경지였다.
 
자기에 관한 후속 연구 조사에서, 그는 정신과 비정신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 지역을 찾아냈다. 원형 자체는 유사 정신이며 정신 경계들의 한계에만 엄밀히 속해 있지 않으므로, 원형은 내면과 외부 세계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며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부순다.
 
 
융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심원한 질서와 통일성이 있다는 동시성 이론을 제시했다.
 
 
 

혼돈 속 형태

 
 
드러난 형태들이 우연히 다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이 기막힌 우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주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불가사의할 정도로 정확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융은 원형이 `경계를 침범하는 것`으로서 정신 영역에만 제한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원형이 경계를 침범할 때 정신의 모체 안에서 나오거나 우리 주변 세계에서 나오거나, 또는 양자에서 동시에 나와 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양자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동시적이라고 한다.
 
정신 이미지는 인간 의식의 반사경 형태로 실재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다. 정신과 세계가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비추는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융이 주장하는 기본 테제이다.
 
 
 

동시성의 관념 발달

 
 
동시성 이론에 따르면, 융의 자기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의식과 정신에서 철저히 초월해 있는 특성을 보여주며, 이건 심리학, 물리학, 생물학, 철학, 영성이 갖추는 능력을 분리하는 공동 경계선에 도전한다.
 
 
심리학은 전통적으로 인간의 마음 문제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한계를 두지만, 자기와 동시성 이론을 통한 융의 분석심리학은 이러한 임의적 분할에 도전했단 것이다.
 
 
융이 한때 학생들에게 자기의 끝은 어디까지며 그 경계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자기는 끝이 없다, 즉 무한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자기 이론에 동시성의 함축을 고려하고 있었음을 숙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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